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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먹을 걸 주는 게 빨간불 앞에서 멈추는 것처럼 당연한 세상,

빨간불을 무시하고 달린 운전자에게 벌금을 부과하듯이 남에게 먹을 걸 주지 않거나 보살피지 않는 사람은

추방되거나 벌을 받는 세상, 남을 보살피는게 자신을 보살피는 것보다 오히려 중요한 세상,

"너희는 남이 자신에게 하길 원하는 그대로 남에게 행하라"는 가름침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세상.

이것이 노력해서가 아니라 일상습관으로,

세상의 이치이자 사회의 기본 전제로 이루어지는 세상을 한번 상상해보라.

바로 이런 게 신족의  문화이고 구문화의 방식이다.

 

우리 신문화는 생산성과 사유재산을 중요시한다.

반면에 구문화는 공동체를 중요시한다.

'현대인' 들로서는 공동체가 사유재산보다 더 중요한 세상을 상상하기가 불가능하거나 어렵다.

하지만 이것이 이 세상인구의 1%가 지금도 살아가는 방식이고, 우리의 모든 조상이 10만년 동안 살던 방식이다.

우리의 문화관에는 좋고 더 좋고 제일 좋은 것과 나쁘고 더 나쁘고 제일 나쁜 것이라는 서열 구분이 담겨 있다.

자연은 인간보다 더 낫고 더 고상하다거나,

인간은 자연보다 뛰어나기에 자연을 지배하고 굴복시킬 고상한 의무를 가지고 있다은 식이다.

한 쪽이 좋은 놈이고 다른 쪽은 못한 놈이다.

하지만 자연을 전혀 다르게 보는 견해가 있다.

구문화는 거의 예외없이 우리 인간은 자연과 다르지도 않고, 자연에서 분리되지도 않으며,

우리가 자연을 책임지는 것도 자연보다 뛰어난 것도 아니라는 믿음을 가장 기본개념으로 지닌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여서, 우리가 자연에게 하는 모든 행위가 결국 우리 자신에게 하는 행위이고,

우리가 자신에게 자지르는 모든 행동이 세상에게 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자연' 이란 개념이 따로 없다.

그 모두가 우리고, 우리가 그 모두다.  -'구 문화의 삶' 에서-

 

자~ 다시 부족사회로 넘어갑니다.

 

부족집단의 구조

인류는 십만년 이상 부족단위로 조직되어 생활해왔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오늘날 존재하는 부족민들에 대한 분석결과, 부족생활은 도시/국가 생활보다 스트레스가 비교적 적고 만족스러우며

여가시간이 많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무한히 지속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부족은 다섯 가지 기본 특징을 갖는다.

 

1.정치적 독립

2.평등한 구조

3.현지 자원의 재생을 통한 자원확보

4. 독자적 정체의식

5. 타 부족의 정체성 존중

 

정치적 독립

보통 열 명에서 이백 명 정도로 이루어지는 부족은 그 자체로 독립된 정치 단위이다.

초기 미국 정착민들이 부족 단위로 살아가는 원주민과 거래할 때 느꼈던 문제 중 하나가,

자신들식의 사회조직 관념에 근거해서 서열식 도시/국가 조직

(마을 같은 지역집단이나 주나 국가 같은 대 집단들)을 기대했지만 이런 조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착민들은, 30명에서 50명으로 구성되는 한 지역 부족과 모종의 거래를 채결하면,

이 거래가 같은 부족명을 쓰거나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원주민들에게 적용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거는 물론 지금도 그렇게 되는 경우가 없다.

몇천 개씩에 달하는 체인 부족과 아파치 부족, 파아우테 부족이 있었지만,

각 부족은 정치적으로 독립된 단위였다.

 

평등한 구조

부족 내의 지도력은 일종의 자문역이지 권한이 아니었다.

(물론 에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인류학적 사료들은 그런 경우가 아주 드물다는 걸 보여준다).

초기의 미대륙 침략자들에게는 이 점 역시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들은 이것을 후진성의 상징으로 간주하면서, 부족의 '추장' 이나 지도자를 찾곤 했다.

그런 사람과 협상하면 나머지 부족민들도 따를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사실 부족의 지도력은 평의회가 지니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평의회조차 권위적이라기보다는 자문역이었다.

그러하듯이 권력도 부족민 전체가 공유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키부츠 운동에서 잘 드러나듯, 공동체주의는 주로 '소부족' 집단에서만 가능하지

대규묘 도시/국가 체게에서는 성공할 수 없다.

후자의 체계에 공동체주의를 무리하게 적용시킨 것이 구 공산주의였다.

부족 내에도 의술사나 무당, 추장 같은 고위직 사람들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도시/국가 제도에 대폭 오염되기 이전에 부족과 접촉했던 사람들이 남긴 기록을 자세히 읽으면,

이런 직함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특별한 취급을 받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부족민들에게 이런 사람들의 특별한 역할은 지배할 기회가 아니라 봉사할 의무를 진 것으로 간주되었다.

 

현지자원의 재생을 통한 자원확보

부족들은 자기 향토에서 나는 것을 먹고, 그것이 바뀌거나 없어질 경우는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개중에는 정규 이동지역들을 가지고 있어서 , 한 굿에서 두세 달에서 이삼 년씩 보낸 후 다음 지역으로 옮겨가는 부족들도 있었다.

이렇게 되면 먼저 살던 지역이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물론 정착생활이나 농경생활을 하는 부족도 있었다.

여기에서 중심개념 두 가지는 "현지성" 과 "재상가능성" 이다.

지역환경과 친밀한 관계를 우지하며 사는 부족들은

대체로 자연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회/법률 체계와 종교를 발달시키기 마련이다.

(부족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원을 개발하고 절약했기 때문에 이들이 사는 지역은

대체로 천연자원이 풍부했다.

때문에 도시/국가 문화의 약탈자들이 눈독을 들이게 만드는 요인이 도기도 했다.)

 

독자적 정체의식

부족은 본디 그 부족 태생이다.

부족이 그의 정체성identity을 규정한다.

부족은 복음을 전파하지 않고 (바끙로 나가 다른 사람들을 그들 방식으로 전향시키지 않고),

'개종자' 나 '새 주민' 을 받지 않으며, 자신들에게 가장 좋은 건

자신들의 생활방식, 자신들의 세계관, 자신들의 신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아파키도 자신을 늑대나 산이라고 선언하지 않듯이, 크리족으로 선언할 생각이 없다.

이건 상상할 수도 없는 발상이다.

이 같은 자기부족 중심주의는 부족 단위의 장기 생존을 보장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고,

부족들이 몇십만 년 동안 존재하고 계승되어올 수 있었던 이유의 하나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다양한 여러 부족들의 존재로 보장되는 인간사회의 다양성은

인류 전체를 튼튼하게 하는 데 이바지한다.

다양한 생태계는 튼튼한 반면, 단종(單種) 혹은 단문화(單文化) 시스템은

연약해서 압력을 받으면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타 부족의 정체성 존중

이따금 부족끼리 갈등하거나 경쟁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포틀래체(겨울축제 기간에 선물 나누기)와 파우파우(북미 인디언특유의 사교모임) 행사에서 보듯이, 이들은

대체로 협력하며 살아갔다.

한 부족이 다른 부족의 종교. 사회적 관습들을 경멸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런 경멸이 대량학살을 불러온 전례는 거의 없었다.

설령 다른 부족과 싸우더라도, 결코 그 부족 전체를 몰살시키지는 않았다.

따지고 보면 다른 부족들의 존재는 유용했다.

자기 부족과는 다른 물건을 만드는 그들이 있어야 물물교환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른 물건을 만드는 그들이 있어야 물물교환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대게 부족간 행사나 물물거래의 일부로 이루어지는 부족간의 결혼은

강한 유전자 공급원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그들'다른 부족으로 있기 때문에

해당 부족이 '우리' 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비록 부족간의 분쟁으로 이따금 사람이 죽을 때도 있었지만,

많은 수가 죽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사실 지금까지의 인류학자들이 연구했던 대다수 부족들의 경우, 부족간 분쟁은 죽음과 무관했다.

부족간 분쟁은 자기부족과 상대부족이 '우리' 와 '그들' 로서

독특한 성격과 경계를 유지하고 굳히는 것을 도와주는 역할만 했다.

그 자체로 양 부족 모두의 생존에 기여했던 것이다.

 

 

1보전진을 위한 2보후퇴로

저는 지금 부족사회에서 다시한번 고진재사회의 면모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다음장은 도시/국가 문화의 구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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